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툴룬 왕조 (문단 편집) == 멸망 == 아바스 칼리파 알 무크타피는 포로들과 함께 바그다드로 개선했고,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 알 카팁도 904년 2월 2일에 합류했다. 11일 후 후세인 등 카르마트군 포로들이 공개 처형되었다. 비록 906년에도 아부 가님 나스르가 시리아, 자카르위 본인이 이라크에서 거병하는 등 반란은 907년까지 이어졌지만 하마 전투의 승리로 그 기세는 크게 꺽인 터였다. 한편 시리아 지역에서 위엄을 보인 아바스 조정은 더 나아가 904년 5월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 알 카팁을 시리아로 파견했다. 바드르 알 함마미가 전향했고, 12월 이집트에서 정변이 일어나 하룬이 시해되고 숙부 '''샤이반'''이 옹립되자 투그즈 이븐 주프 역시 전향했다. 기세를 얻은 아바스군이 푸스타트로 진군하자 샤이반 역시 항복했다.(905년 1월 10일) 이렇게 해서 튀르크계 툴룬 왕조는 5대 38년만에 멸망했다. 아바스군은 이븐 툴룬 모스크를 제외한 기존 수도 알 카타이를 파괴했고, 툴룬 왕가와 추종자들은 바그다드로 압송되어 재산을 압류당했다. 무함마드 이븐 술레이만 알 카팁은 이사 앗 누샤리를 총독으로 봉하고 시리아로 돌아갔는데, 전리품의 횡령 혐의로 체포되어 해임되었다. 다만 아바스 칼리파조의 직접 지배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서쪽의 이스마일파 [[파티마 왕조]]의 침공에 시달린 끝에 932년, 역시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출신의 튀르크 계 수니파 [[이흐시드 왕조]]가 건립되면서 아바스 왕조의 짧은 제2차 이집트 지배는 27년만에 끝이 났다. 그 후 이집트는 고대~중세 초기와 달리 이라크/이란 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